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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유 사람이 복잡한 사고의카테고리 없음 2021. 4. 21. 17:00
르네 데카르트는 Cogito, e rgosum;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와 자신의 정체성을 간단하면서 상식적인 수준의 말로 표현했다.
당대 최고의 대열에 속했던 그는 스스로를 왜 이처럼 이른바 하등한 조건으로 표현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좀 더 화려하고 비교할 수 없는 조건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의심은 사소한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를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교황 또는 성직자 계열에서만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주님의 뜻을 들을 수 있다는 사상을 넘어 성도라면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역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적 확대가 가능해진 것도 이러한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물론 산업화와 종교개혁이 시간적으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신앙의 유무를 불문하고 우리는 모두 말한다. 발전된 사회를 좋아하고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모두가 환영하는 사실이 어떤 원동력에 의해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화는 단순한 기술 분야를 여러 복잡한 과정에서 분업화하고, 그렇게 분업화된 분야를 보다 세밀한 수준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현상을 보게 되면서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졌다. 새로운 언어를 과감하게 시민들 사이에 전파하면서 사물에 대한 이해의 폭은 점점 명확해져 갔다.
그 결과 우리는 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자연현상을 무리 없이 사고할 수 있었고, 그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나누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다.
신앙에 있어서도 그렇다. 자식 세대지만 부모 세대에게 과감하게 신앙을 가르치려는 자신을 볼 수 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구시대의 신앙을 위한 현대의 주역들은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신앙 수준을 전하려고 한다. 확실히 부모 세대의 신앙을 통해 우리가 자랐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렇기에 문명, 기술, 그리고 신앙 등이 발전하지 못했던 과거보다 발전된 현재의 모습에 높은 가치를 둔다는 점을 우리는 항상 인정해 왔고 인정하고 있다.
르네 데카르트도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사고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으로 자신의 질적 수준을 최대한 끌어낸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데카르트의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 있다면) 우리도 주변의 사고 수준에 머무르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연현상을 보고 어려워하기보다는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수준에서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고수준의 능력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상의 삶이 그래야 하고 신앙의 모습이 그래야 한다.그럴 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